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만든 교육법

2019/02/14
위인을 만든 교육법 20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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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의 영부인이었으며, 전 미국 연방 뉴욕주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228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출마하며, 미국에 남은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여성 정치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오늘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유일했던 대선 주자이자, 보이지 않는 차별에 안주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정치 경력을 쌓고, 나아가 여성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도전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만든 교육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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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다이앤 로댐 클린턴 (Hillary Diane Rodham Clinton)

1947. 10. 26 ~

힐러리 다이앤 로댐 클린턴은 1947년 10월 26일 시카고에서 아버지인 휴 로댐과 어머니인 도로시 하웰 로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미국 동북부의 7대 명문 여자대학으로 손꼽히는 웰즐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예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아칸소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했는데요.

 

이후 남편인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에 출마하면서 힐러리도 자연스럽게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 힐러리는 농촌 지역 건강 지원 위원회장으로서 빈곤 지역의 의료 시설 확충 등을 이끌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따내는 등 뛰어난 실적을 올렸습니다. 이후 남편 빌 클린턴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영부인 자격으로 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의료보험 보장 개혁안 등을 이끌었고, 이후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 및 국무장관 역임했습니다. 이러한 여정 끝에 지난 2016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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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굴복하지 말아라”

정치 선진국 가운데 미국은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유독 낮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의회에 진출한 여성 정치인이 50%에 육박하는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40%를 넘는 스웨덴, 멕시코 등과 달리 미국은 20%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요(2017년 기준, 국제의회연맹). 그렇기 때문에 후보로서 대통령의 지위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여성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최고 정치인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힐러리 클린턴의 어머니였던 도로시 로댐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라”라는 가르침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힐러리가 네 살일 때, 집 근처 여자아이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울며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도로시는 힐러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 자신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두려운 일이 있더라도 고개를 돌리지 말고,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여줘”라고 말이지요. 이후 힐러리는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피하지 않았고, 그 아이 또한 더는 힐러리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해요.

 

이때 쌓은 ‘자신감’이란 자산은 이후의 정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대통령에 도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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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도로시는 힐러리가 매우 독립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힐러리에게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목표를 크게 두라”고 가르쳤다고 해요. 그 당시로선 특이하게도 “힐러리가 자라면 미국 최초로 여성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될 것”이라며 딸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쳐주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어머니의 영향 덕분일까요? 힐러리는 14세 때 우주 비행사를 꿈꾸며 미국 항공우주국에(NASA)에 지원 서류를 보내기도 했다고 해요. 비록 “여성은 선발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힐러리는 이후에도 절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삶을 이어갔는데요. 그 도전은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져 결국 ‘세계의 지도자’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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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을 가능케 했던 강인함과 평정심

힐러리의 도전은 ‘강인함’과 ‘도전정신’ 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무장관으로 취임할 당시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이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그녀는 국무장관으로서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세워야 할 막중한 책무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힐러리는 이 막중한 책무를 앞에 두고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외교에 임했고, 이 덕분에 적대국과의 여러 협상을 타결로 이끌 수 있었지요.

 

이러한 힐러리의 평정심은 ‘벵가지 청문회’에서 큰 빛을 발했는데요. 힐러리의 국무장관 재임 시절 리비아의 이슬람 무장단체로부터 미국 영사관이 습격을 받은 사건의 책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장장 11시간 넘게 진행된 청문회에서 힐러리는 단 한 번도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청문위원의 질문에 차분히 답했습니다. 2015년 열린 이 청문회 이후, 힐러리는 대선 후보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다졌습니다.

 

위기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또한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요. 도로시는 어린 힐러리에게 목수들이 사용하는 수준기(기울기를 조사하는 데 쓰이는 도구)를 이용해 수준기 안의 기포가 어느 쪽으로 이동하는지 틈틈이 보여주었어요. 그러면서 “네가 이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기포가 항상 중앙에 오도록 노력해보렴”이라고 말하며 평정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힐러리의 평정심은 이러한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 여성 정치인으로서 힐러리 클린턴의 삶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을 때로는 강인하게 때로는 침착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해갔으며, 끝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에까지 이를 수 있었죠.

 

그러나 어린 시절 “강인함”고 “도전”, “평정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힐러리 클린턴은 꽤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 윤스기자가 전해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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